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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철학으로 해석하는 술과 예술: 도취는 ‘탈주선’이 될 수 있는가 들뢰즈에게 예술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자체를 새로 “생성”하는 사건이다. 그는 세계를 고정된 실체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연결되고 흩어지는 흐름들의 장(場)으로 보았다. 이때 술의 도취는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몸과 언어와 관계의 배치를 잠시 바꾸는 하나의 힘으로 읽힐 수 있다. 술이 들어가면 말의 리듬이 달라지고, 감각의 초점이 이동하며, 금기와 습관의 경계가 느슨해진다. 들뢰즈의 개념으로 말하면 이는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다른 경로를 여는 ‘탈주선(line of flight)’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탈주가 창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탈주가 새로운 삶의 구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곧바로 더 강한 종속과 반복으로 되돌아오는 ‘재영토화’가 된다... 2026. 1. 25.
쇼펜하우어로 바라본 술과 예술: 의지의 고통을 잠시 멈추는 기술 쇼펜하우어에게 세계는 본질적으로 평온하지 않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의 계획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원하게 만드는 맹목적 힘, 곧 ‘의지’이며, 의지는 충족되는 순간 곧바로 다음 결핍을 낳는다. 그래서 삶은 결핍의 불안과 충족의 허무 사이를 오가며, 고통이 기본값처럼 깔린다. 이런 세계관에서 술과 예술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고통의 기계가 잠시 멈추는 통로로 이해된다. 술은 감각과 정서를 빠르게 변형시켜 욕망의 날을 무디게 하고, 예술은 관조의 상태를 통해 의지의 요구로부터 잠깐 거리를 확보하게 한다. 그러나 두 통로는 결말이 다르다. 술의 도취는 대개 짧고 다음 날의 반동을 남기기 쉬운 반면, 예술의 관조는 의지에서 벗어난 ‘순수한 인식’의 경험을 통해 보다 정교한 휴지를 제공한다. 이 글.. 2026. 1. 24.
칸트 미학으로 풀어보는 술과 예술의 관계: 무관심적 쾌와 도취의 경계 술과 예술은 종종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전시를 본 뒤와인을 기울이며 작품을 논하고, 공연이 끝난 뒤맥주잔을 맞대며 여운을 정리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두 가지 쾌락이 겹쳐있다. 하나는 술이 주는 감각적 쾌락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이 주는 미적쾌락이다. 칸트는 미적판단의 핵심을‘무관심적쾌’에서 찾는다. 즉 아름다움을 느낄 때 우리는 대상을 소유하거나 사용하려는 욕망과 거리를 두고, 형식이 주는쾌를 자유롭게 맛본다. 반대로 술의 쾌는 대개 신체상태를 직접적으로 변형시키며 욕망을 부드럽게 밀어 올린다. 이 글은 칸트의 미학개념(무관심성, 목적 없는 합목적성, 공통감각)을바탕으로 술이 예술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지, 혹은 미적판단을 기분의 판정으로 무너뜨리는지를 세밀하게 가른다. 그리고‘도취를 배제한 미’가 .. 2026. 1. 24.
플라톤은 예술가의 술을 어떻게 보았는가: 모방, 광기, 그리고 절제의 정치학 술은 예술가의 영감을 깨우는 불꽃으로도, 이성을 흐리는 안개로도 말해진다. 그러나 플라톤의 철학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질서와 도시의 질서를 동시에 시험하는 매개이다. 그는 시인과 예술가를 무턱대고 찬양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술이 진리를 비추기보다 모방을 반복하며 감정을 자극해 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취기는 이러한 우려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된다. 동시에 플라톤은 ‘광기’가 언제나 타락만을 뜻한다고 보지도 않았다. 사랑과 시, 예언과 종교적 도취 같은 특정한 광기는 인간을 일상적 계산 너머로 끌어올려 더 큰 것을 향하게 할 수 있다고도 보았다. 중요한 것은 술이 불러오는 상태가 영혼의 조화를 돕는지, 아니면 영혼을 분열시키는지의 문제이며, 그것은 개인의 윤리로 .. 2026. 1. 23.
카뮈의 부조리 철학으로 해석한 술과 예술의 연대, 그리고 절제의 품격 카뮈에게 세계는 인간의 기대에 친절하게 응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미를 찾고 질서를 요구하지만, 세계는 종종 침묵으로 답하며 그 침묵이 바로 ‘부조리’의 감각을 낳는다. 이때 술은 부조리를 견디는 방식으로 자주 호출된다. 술은 잠시 현실의 날을 무디게 하고, 고독을 덜어주며, 말과 웃음을 빌려 삶의 무게를 옮겨 놓는다. 그러나 카뮈의 관점에서 술이 ‘망각’으로만 기능한다면 그것은 부조리로부터의 도피이며, 결국 더 큰 공허를 부른다. 반대로 술이 삶의 부조리를 직시한 뒤에도 ‘그럼에도 살아가자’는 태도, 즉 반항과 연대의 감각을 촉발한다면 술은 예술과 닿는 한 가지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글은 카뮈의 부조리·반항·연대라는 핵심 개념을 바탕으로 술이 예술 경험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술이 예술가의 삶을.. 2026. 1. 23.
사르트르 실존주의로 본 술의 유혹과 예술가의 자기기만 문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이 미리 정해진 본질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이때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를 잠시 덜어주는 장치로 등장한다. 술을 마시면 불안이 누그러지고 말이 쉬워지며, 책임을 미루는 변명도 손쉽게 마련된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시선에서 그러한 ‘가벼움’은 곧 자유를 회피하는 방식, 즉 자기기만(앙가주망의 회피)과 ‘나쁜 믿음(mauvaise foi)’의 형태가 될 수 있다. 반면 술이 언제나 도피라는 결론도 성급하다. 술자리가 타인과의 관계를 새로 직면하게 만들고, 예술가에게는 자신이 숨기던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글은 사르트르의 핵심 개념인 자유, 책임, 타인의 시선, 나쁜 믿음을 바탕으로 술.. 2026.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