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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검열이 줄면 예술이 좋아질까에 대한 냉정한 답

by 아빠띠띠뽀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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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검열이 줄어들면 예술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자연스럽다. 머릿속에서 “이건 유치해”, “남들이 비웃을 거야”, “이 수준으로는 내놓을 수 없어” 같은 목소리가 줄어들면, 표현은 과감해지고 문장은 더 빠르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기 검열은 많은 창작자의 출발을 가로막는 가장 흔한 장애물이며, 술이나 특정한 분위기는 그 장애물을 일시적으로 낮춰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검열은 단순히 나쁜 습관이 아니라, 작품을 ‘남길 만한 형태’로 만드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검열이 너무 강하면 시도 자체가 사라지고, 검열이 너무 약하면 완성도가 무너진다. 결국 관건은 “줄이느냐, 늘리느냐”가 아니라 “언제 줄이고 언제 세울 것인가”다. 이 글은 자기 검열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발산과 수렴의 관점에서 분해하고, 검열이 줄어든 상태가 왜 자유로우면서도 위험한지, 그리고 술에 기대지 않고도 ‘검열의 타이밍’을 설계하는 방법까지 차근차근 제시한다.

자기검열이 줄면 예술이 좋아질까에 대한 냉정한 답 이미지

 

검열을 끄면 자유가 오지만, 자유만으로는 작품이 남지 않는다

창작을 방해하는 가장 잔인한 적은 외부의 비평이 아니라 내부의 판사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판결이 내려진다. “이 정도면 촌스럽다”, “이미 누가 했던 이야기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라는 판단이 손을 멈추게 한다. 이때 자기 검열을 낮추면 분명 얻는 것이 있다. 첫째, 시작이 가능해진다. 둘째, 표현이 과감해진다. 셋째,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검열이 줄면 예술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기 쉽다. 특히 술을 마시거나 밤의 분위기에 젖어 검열이 약해진 상태에서 메모가 쏟아지면, 그 쏟아짐 자체가 ‘예술의 탄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예술이 좋아지는지의 문제는 “얼마나 많이 쏟아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남았는가”에서 결정된다. 예술은 감정의 양이 아니라 형태의 설득력으로 평가받는다. 형태란 구조, 리듬, 선택, 삭제, 균형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형태를 만드는 데에는 어떤 종류의 검열이 필요하다. 다만 그 검열은 창작을 죽이는 검열이 아니라, 창작을 살리는 검열이어야 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작 단계에서의 검열은 창작을 멈추게 하고, 마무리 단계에서의 검열은 창작을 작품으로 만든다. 자기 검열이 줄면 예술이 좋아질까라는 질문은, 결국 “검열을 언제 줄일 것인가”라는 시간의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가상 실험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당신의 머릿속에 ‘검열 버튼’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떤 문장도 비판 없이 써진다. 버튼을 계속 켜 두면 분명 글은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 글은 독자에게 전달 가능한 구조를 갖추었는가. 반대로 버튼을 계속 꺼 두면, 글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창작자는 버튼을 켜는 시간과 끄는 시간을 분리해야 한다. 즉, 발산의 시간에는 검열을 낮추고, 수렴의 시간에는 검열을 높이는 방식으로 ‘검열의 타이밍’을 설계해야 한다. 이 설계가 없을 때, 술은 버튼을 강제로 켜는 손쉬운 도구가 되지만, 동시에 수렴의 능력까지 함께 흐리게 만들어 작품을 멀게 하기도 한다.

 

좋은 검열과 나쁜 검열: 예술을 살리는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법

자기 검열을 먼저 둘로 나눌 필요가 있다. 첫째는 ‘사회적 검열’이다. 타인의 시선, 체면, 평판, 시장의 유행, 내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만든 검열이다. 이 검열은 시작 단계에서 특히 해롭다. 왜냐하면 아직 형태도 없는 것을 평가해 버리기 때문이다. 씨앗을 열매로 심판하면 씨앗은 자라지 못한다. 둘째는 ‘형식적 검열’이다. 리듬이 어긋나는지, 논리가 무너지는지, 감정의 흐름이 설득력 있는지, 반복이 과한지, 장면이 살아 있는지 같은 점검이다. 이 검열은 마무리 단계에서 필수적이다. 즉, 사회적 검열은 줄여야 하고, 형식적 검열은 키워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창작자가 초반부터 사회적 검열을 과도하게 켠다는 데 있다. “남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예측이 “내가 싫어해야 할 것”으로 둔갑한다.

술이 자기 검열을 낮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주로 사회적 검열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술은 체면을 느슨하게 하고, 타인의 평가를 덜 상상하게 하며, “그냥 해보자”로 사람을 밀어붙인다. 그래서 발산이 늘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술은 형식적 검열의 정밀함도 낮추기 쉽다. 문장의 결이 거칠어지고, 논리의 연결이 뛰고, 감정의 강도가 과장되며, 좋은 삭제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취기 속에서 나온 결과물은 생기와 용기가 있을지언정, 그대로 작품이 되기엔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결국 술이 주는 자유는 “예술이 좋아졌다”기보다 “예술이 시작되었다”에 가깝다. 시작은 중요하지만, 시작만으로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자기 검열을 줄였을 때 예술이 좋아지는 조건은 무엇인가. 핵심은 ‘단계 분리’다. 발산 단계에서는 한 가지 규칙만 남기고 나머지 검열을 내려놓는 것이 유효하다. 예컨대 “10분 동안은 어떤 문장도 지우지 않는다” 혹은 “오늘은 소재만 30개 뽑는다” 같은 규칙이다. 이 규칙은 사회적 검열을 무력화하면서도, 완전한 방종을 막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된다. 반면 수렴 단계에서는 검열을 강하게 켜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 문장이 멋있는가”가 아니라 “이 문장이 기능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장면을 살리는가, 인물을 드러내는가, 논지를 밀어붙이는가, 리듬을 만들고 있는가. 기능의 질문은 감정적 자존심을 덜 건드리면서도 작품을 단단하게 만든다.

또 하나의 조건은 ‘검열의 주체’를 바꾸는 것이다. 창작자가 자기 검열에 휘둘릴 때, 그 검열은 종종 모호한 군중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대중이” “누구나” 같은 가상의 관객이 창작자의 등을 움켜쥔다. 반면 검열을 살리는 방식은 관객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 글을 읽을 사람은 지금 지쳐 있다” “이 그림을 볼 사람은 이 장면에서 멈추어 서야 한다”처럼 구체적 상황을 상정하면, 검열은 두려움이 아니라 설계가 된다. 두려움의 검열은 창작을 멈추게 하지만, 설계의 검열은 창작을 정렬한다. 자기 검열이 줄면 예술이 좋아질 수 있는 이유는, 두려움의 검열이 약해질 때 설계의 검열을 더 건강하게 작동시킬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론: 검열을 줄일 게 아니라, ‘켜고 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검열이 줄면 예술이 좋아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냉정한 답은 이렇다. “어떤 단계에서는 그렇고, 어떤 단계에서는 아니다.” 검열이 줄어드는 것은 특히 발산 단계에서 유익하다. 시작을 가능하게 하고, 예상 밖의 연결을 만들고, 감정의 직접성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같은 방식의 검열 감소가 편집과 완성 단계까지 이어지면, 작품은 쉽게 흐트러진다. 따라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검열의 양을 조절하는 기분이 아니라, 검열의 타이밍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없으면 술은 손쉬운 버튼이 되지만, 버튼의 부작용까지 함께 끌고 온다. 술이 제공하는 것은 시작의 용기일 수 있지만, 작품을 남기는 힘은 다음 날의 정교함에서 나온다.

실천적으로는 ‘이중 작업’이 가장 효과적이다. 1차 작업은 검열을 낮춘 상태에서 빠르게 쏟아내고, 2차 작업은 검열을 높여 기능 중심으로 다듬는다. 여기서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1차에서 나온 것을 즉시 평가하지 말 것. 즉시 평가는 사회적 검열을 다시 불러온다. 대신 “하룻밤 숙성”처럼 시간을 두고 2차에서 판단한다. 그리고 2차에서는 감정적 기준(멋있다/촌스럽다) 보다 기능적 기준(전달된다/안 된다)을 사용한다. 이 작은 전환만으로 자기 검열은 창작의 적에서 창작의 동료로 바뀐다. 검열은 불을 끄는 도구가 아니라, 빛을 모으는 렌즈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 검열을 줄이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술이 아니라 환경과 규칙이다. 술은 검열을 낮추는 동시에 판단의 정밀함까지 흔들 수 있지만, 환경과 규칙은 검열을 낮추되 판단을 지킬 수 있다. 예컨대 제한 시간 글쓰기, 초고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는 개인 노트, 실패를 말해도 괜찮은 동료와의 공유, 그리고 “오늘은 초고만” 같은 선언은 술 없이도 검열을 낮춘다. 중요한 것은 ‘검열이 줄어드는 상태’를 운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운에 맡기면 술이 필요해지고, 술이 필요해지면 검열은 결국 더 강해진다. 반대로 설계하면 검열은 필요할 때만 작동한다. 자기 검열이 줄면 예술이 좋아질 수 있다. 다만 그것은 검열을 없앤 결과가 아니라, 검열을 다루는 법을 배운 결과일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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