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소비자의 음주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면서 저도주 시장이 주류 산업의 핵심 성장 축으로 부상했다. 기존에는 고도수 주류 중심의 소비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건강과 취향, 감성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전환되고 있다. 하이볼, 과실주, 와인 등은 이 변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여성 중심의 소비 패턴이 주류 업계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하이볼 시장의 여성화
하이볼은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받는 저도주 카테고리다. 과거 위스키가 남성 중심의 음료로 인식되던 것과 달리, 하이볼은 탄산수와 섞어 마시는 가볍고 청량한 술로 여성층에 빠르게 확산됐다. ‘위스키 입문용’이라는 타이틀 아래 도수를 낮춘 하이볼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되었고, 특히 레몬이나 자몽 같은 과일 향이 가미된 변형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들이 하이볼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 도수가 부담스럽지 않다. 둘째, 맛과 향이 다양하다. 셋째, 분위기와 감성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특히 혼술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하이볼 캔 제품의 판매량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소용량, 저당, 저칼로리 제품이 늘어나며 건강과 자기 관리까지 고려한 제품군으로 발전했다. 주류업계에서는 여성 소비자의 취향을 세분화한 하이볼 라인을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대표 브랜드들은 ‘라이트 하이볼’, ‘과일향 하이볼’ 등 세분화된 콘셉트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2024년 기준 국내 하이볼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약 25% 성장했으며, 그중 여성 소비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이볼은 더 이상 남성용 술이 아니라, 여성 중심의 저도주 트렌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과실주로 확장되는 감성 음주
과실주는 여성 음주 문화의 감성적 측면을 대변한다. 달콤한 맛과 화려한 색감, 그리고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이다. 복분자주, 매실주, 유자주, 청귤주 등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며 과거 전통주의 이미지를 벗고 세련된 저도주로 재해석되고 있다. 특히 SNS와 홈파티 문화의 확산은 과실주 소비 증가를 견인했다. 여성들은 과실주를 단순히 술로 소비하지 않는다. 음식과의 페어링, 테이블 연출, 인스타그램 감성 사진 등 ‘분위기 소비’의 일환으로 즐긴다. 또한 과실주는 건강과 미용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항산화 성분, 비타민 함유 등을 강조한 제품이 많아지며 ‘가볍게 마시는 건강한 술’로 인식되고 있다. 과실주 시장은 지역 특산주 중심에서도 벗어나 전국 유통망을 갖춘 대형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2023년 이후 편의점에서도 소용량 과실주가 상시 진열될 정도로 수요가 높다. 또한 알코올 도수를 3~8도 사이로 낮춘 제품이 주류를 이루며, 여성 소비자에게 접근성을 높였다. 이런 변화는 ‘술=무거운 술자리’라는 인식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결국 과실주는 여성 음주 문화의 핵심 키워드인 ‘가볍게, 예쁘게, 즐겁게’를 가장 잘 구현하는 저도주다. 주류업계는 이를 중심으로 신제품을 빠르게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형 과실주가 새로운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와인, 여성 저도주의 프리미엄화
와인은 저도주 중에서도 프리미엄 시장을 이끄는 주류다. 도수는 12도 내외로 하이볼이나 과실주보다 약간 높지만, 천천히 즐기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담은 적다. 여성들은 와인을 단순한 술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소비한다. ‘기분 전환용 한 잔’, ‘퇴근 후의 여유’, ‘홈카페 감성’ 등이 와인을 선택하는 대표 이유다. 특히 MZ세대 여성층에서는 캔 와인, 미니병 와인 등 접근성이 높은 제품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와인의 프리미엄 이미지가 유지되면서도 가격과 용량이 다양화되어 ‘일상 속 와인 소비’가 가능해졌다. 또한 와인 문화 클래스, 와인 페어링 레스토랑, 온라인 구독 서비스 등이 확산되며 여성들의 경험 기반 소비가 늘고 있다. 건강 측면에서도 와인은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폴리페놀과 레스베라트롤 같은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적당한 섭취 시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요소들은 여성들의 자기 관리 욕구와 맞물리며 저도주로서의 와인 소비를 촉진한다. 결국 와인은 여성 저도주 시장의 ‘프리미엄 세그먼트’다. 하이볼과 과실주가 대중성을 확보한다면, 와인은 개인의 품격과 감성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여성 음주 시장은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여성 소비자의 취향이 바꾸는 저도주 시장은 이제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다. 하이볼, 과실주, 와인은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니지만 공통적으로 ‘가볍고 즐거운 음주’라는 방향성을 공유한다. 이 변화는 주류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제품의 맛뿐 아니라 패키지, 마케팅, 문화적 메시지까지 여성 친화적으로 재설계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앞으로 여성 중심의 저도주 시장은 세분화, 프리미엄화, 글로벌화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여성 소비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음주자가 아니다. 그들은 음주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주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