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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예술가의 창작 동기를 자극한다는 믿음의 역사

by 아빠띠띠뽀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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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예술의 관계는 늘 양면적이다. 한 잔의 술이 혀를 풀고 마음의 빗장을 풀어, 평소라면 숨겨 두었을 감정과 생각을 밖으로 밀어 올린다는 믿음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예술가들은 술을 ‘영감의 문지기’처럼 여기기도 했고, 대중은 예술가의 고독과 결핍을 술잔에 겹쳐 보며 낭만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술이 창작을 돕는다는 서사는 종종 전설과 상업,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과장되며 굳어졌다. 이 글은 ‘취한 영감’이라는 통념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떤 시대적 장면을 거쳐 미학으로 굳어졌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검토되고 있는지 차분히 따라간다. 신화와 현실, 의식과 중독의 경계를 나누어 보며, 술이 예술에 남긴 흔적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술이 예술가의 창작 동기를 자극한다는 믿음의 역사

‘취한 영감’이라는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예술가가 술을 마시며 작품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풍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가 만들어 낸 상징 체계에 가깝다. 사람들은 예술을 “평범한 삶 바깥에서 오는 어떤 것”으로 상상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예술가의 작업실은 흔히 밤과 촛불, 텅 빈 거리, 그리고 잔에 담긴 액체로 채워진다. 술은 그 장면의 소품이면서도 동시에 변명의 장치가 된다. 즉, 예술가가 일상의 규범을 벗어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창작의 고통을 낭만으로 번역해 주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특히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부터, 예술가의 일화는 ‘작품’만큼이나 소비되었다. 독자는 시를 읽는 동시에 시인의 생활을 궁금해했고, 관객은 연극을 보며 극작가의 인간적 약점을 알고 싶어 했다. 이 호기심은 어느 순간 “그는 술을 마셔서 더 뛰어난 작품을 썼다”라는 서사로 굳어지기 쉽다.

역사적으로 술은 공동체의 의례와 긴밀히 결합해 있었다. 제의와 축제에서 술은 사람들을 같은 리듬으로 묶고, 평소의 계급과 위계를 잠시 유예하는 힘을 가졌다. 그때 등장하는 음악과 춤, 이야기, 가면극은 지금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술이 ‘예술의 태생적 친구’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생겼다. 여기에 근대 이후 ‘개인’과 ‘천재’의 개념이 강조되면서, 술은 공동체의 흥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을 흔드는 장치로 재해석되었다. 평범한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체면 때문에 눌러 둔 욕망, 실패와 상실에서 오는 쓸쓸함이 술을 통해 말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때로 진실처럼 설득력 있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술이 감각을 확장한다기보다 선택과 판단의 기준을 느슨하게 만들어 ‘말하게’ 만들 뿐인 경우도 많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서사의 편향’이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무너진 시간을 잘 기록하지 않는다. 대신 술이 있었던 밤에 우연히 떠오른 한 문장, 완성된 한 장면, 성공으로 귀결된 기억만 남겨서 이야기로 포장한다. 이렇게 편집된 기억은 술을 영감의 직접 원인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긴 독서, 실패한 초고, 수없이 반복된 연습은 쉽게 지워진다. 결국 ‘취한 영감’ 신화는 예술의 노동을 희미하게 만들고, 술이 예술을 만든다는 인상을 강화한다. 이 글은 그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반복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어디부터가 사회적 연출인지 차근차근 짚어 보고자 한다.

 

술이 창작을 “돕는다”는 믿음이 굳어진 역사적 장면들

술과 예술의 관계가 단단해진 데에는 특정 시대의 공간과 계층 문화가 크게 작용했다. 예컨대 근대 도시가 성장하면서 ‘카페’, ‘살롱’, ‘주점’은 단순히 마시는 곳을 넘어 대화와 논쟁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신문과 잡지가 돌고, 신작이 낭독되고, 정치와 철학이 섞여 오가던 자리에서 술은 대화를 촉진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누군가에게 술은 긴장을 풀어 주었고, 누군가에게는 적당한 허세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술이 있는 자리는 이야기로 남기 좋았다. 예술가의 명성이 개인의 작품만큼이나 ‘사교의 장면’에서 확산되던 시기, 술자리는 네트워크의 중심이었다. 결과적으로 술은 ‘창작의 원인’이라기보다 ‘창작을 둘러싼 생태계의 일부’였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는 원인과 환경이 뒤섞여 신화가 되기 쉬웠다.

심리학적 차원에서도 술의 역할은 오해와 사실이 혼재한다. 술이 가져오는 대표적 변화는 사고의 명료함이 아니라 억제의 약화다. 평소라면 “이건 유치하다”, “이건 실패할 것 같다”라는 자기검열이 강하게 작동하는데, 술은 그 브레이크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러면 아이디어는 더 많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문제는 그 아이디어의 질과 실현 가능성이다. 술은 발산적 사고의 문을 열어 줄 수는 있어도, 수렴과 편집, 구조화의 능력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많은 예술이 결국 퇴고와 편집에서 힘을 얻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술은 ‘첫 불씨’처럼 작동할 수 있을지언정 ‘완성의 도구’로는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술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라는 체감이 강렬한 이유는, 자유가 실제 능력의 증가가 아니라 금지의 감소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취한 예술가’의 이미지가 낭만화된 데에는 산업적 요인도 있다. 작가와 화가, 음악가가 대중에게 소비되는 과정에서, 작품을 둘러싼 전기적 일화는 마케팅이 된다. 비극과 방탕, 고독과 술은 짧은 문장으로도 전달되기 쉬운 상징이다.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 걸작을 썼다”라는 문장은 작품의 복잡한 맥락을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을 자극한다. 반대로 “그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앉아 원고지 수십 장을 고쳐 쓰고, 운동을 하고, 자료를 정리했다”라는 문장은 사실일지라도 전설이 되기 어렵다. 이 차이가 ‘술이 예술을 낳는다’는 통념을 강화했다. 사람들은 예술을 노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우연한 번개처럼 믿고 싶어 했고, 술은 그 번개를 불러오는 주문처럼 상상되었다.

그러나 역사 속 많은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술과 창작의 관계는 흔히 ‘동기’보다 ‘상태’에 가깝다. 술은 우울과 불면, 사회적 고립과 연결되어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 창작은 그 상태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려는 행위로 나타난다. 즉, 술이 작품을 만들었다기보다, 삶이 흔들릴 때 술과 작품이 동시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술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제 작품으로 남는 과정에는 다음 날의 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노동은 흔히 기록되지 않지만, 작품의 대부분은 그 구간에서 결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술이 예술을 자극한다’는 믿음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술은 예술가가 자기검열을 잠시 내려놓게 만들 수 있으나, 그 순간이 작품의 완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집중과 절제가 뒤따라야 한다.

 

오늘날의 균형 잡힌 시선: 술은 영감이 아니라 맥락이다

현대에 들어 술과 예술의 관계는 더 이상 단순한 미담이나 낭만적 전설로만 다뤄지기 어렵다. 창작자의 건강, 노동 환경, 중독의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술이 있어야만 예술이 된다”는 말은 무책임한 신화로 비판받는다. 특히 젊은 창작자들에게 이 신화는 유해하게 작동할 수 있다. 스스로의 능력을 연습과 학습으로 확장하기보다, 어떤 외부 자극에 기대어 ‘특별한 상태’를 만들려는 욕망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진짜 예술가가 아닌 것 같은 불안, 술을 마셔야 감정이 나온다는 착각은 결국 창작을 습관이 아니라 의존으로 변질시킨다. 그러므로 오늘날 필요한 태도는 술을 금기시하거나 미화하는 양극단이 아니라, 술이 개입하는 맥락을 정직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술이 예술에 등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술이다. 술은 관계를 열고, 대화를 만들고, 공동체적 감정을 형성한다. 이때 예술은 술로 인해 ‘생성’되기보다, 술이 만든 만남과 갈등, 우정과 경쟁 속에서 촉발될 수 있다. 둘째, 개인적 의식으로서의 술이다. 어떤 예술가에게 한 잔은 작업 시작의 신호가 될 수 있고, 긴장 완화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의식이 반복되며 문턱이 높아질 때, 즉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없으면 시작 못 하는 상태’로 굳어질 때 창작은 위험한 협상에 들어간다. 예술은 자유를 필요로 하지만, 자유는 의존과 다르다. 술이 주는 자유가 사실은 통제 상실이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술을 더 정교하게 다룰 수 있다.

결국 ‘술이 창작 동기를 자극한다’는 믿음은 한 부분에서만 유효하다. 술은 동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감정과 생각의 문을 잠시 느슨하게 할 수 있다. 그 문을 열고 무엇을 꺼내어 어떤 형식으로 다듬어 세상에 내놓을지는, 다음 날의 태도와 훈련, 그리고 삶을 조직하는 힘에 달려 있다. 그래서 술과 예술의 관계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술이 내게 영감을 주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술이 필요한 상태에 놓이는가”일지도 모른다. 창작의 본질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술은 예술의 주인이 아니라 주변의 배경이며, 때로는 위험한 그림자다. 그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더 단단한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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