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는 말은 대중문화 속에서 거의 상식처럼 굳어 있다. 실제로 취기가 오르면 말이 빨라지고, 연상이 느슨해지며, 평소라면 “유치하다”거나 “말이 안 된다”는 이유로 버릴 생각이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경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술이 창의성을 키운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창의성은 단순히 생각을 많이 떠올리는 능력만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가치 있는 형태로 선택하고 구조화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술은 ‘발산’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수렴’과 ‘편집’의 힘은 오히려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술이 창의성을 올린다는 통념은 일부 상황에서만 맞고, 많은 경우에는 발산적 사고의 착시를 ‘실력의 증가’로 오해한 결과일 수 있다. 이 글은 술이 왜 발산적 사고처럼 느껴지게 만드는지, 그 효과가 어디까지 유효한지, 그리고 창작을 망치지 않으면서 발산과 수렴을 분리해 활용하는 방법까지 차분히 살펴본다.

아이디어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순간, 무엇이 실제로 바뀌었나
‘창의적이다’라는 말은 흔히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장면으로 대표된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말이 술술 나오고, 연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엉뚱한 연결이 재미있게 들리면 사람들은 “오늘 뇌가 잘 돈다”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때 바뀌는 것은 지능이나 상상력의 절대량이 아니라, 생각을 걸러내는 기준과 속도인 경우가 많다. 평소의 사고에는 두 겹의 장치가 있다. 하나는 ‘가능성 탐색’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검열’이다. 가능성 탐색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발산적 사고이고, 자기검열은 그 뻗어 나간 생각을 즉시 평가해 잘라내는 수렴적 사고의 전단계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기검열을 빠르게 돌린다. “지금 말하면 이상해 보일까”, “이 아이디어는 유치한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가” 같은 판단이 자동으로 들어온다. 술은 이 자동 판단의 브레이크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 결과 발산이 더 많이 ‘보이게’ 되고, 사람은 이를 창의성의 증가로 해석하기 쉽다.
또한 술은 주의의 초점을 바꾸어, 생각을 더 단순한 선으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평소라면 복잡한 맥락을 동시에 고려하며 “그럴 수도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겠지만, 취기 속에서는 단서가 빠지고 결론만 남는다. 이 단순함은 말할 때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과감하고 선명하고, 뭔가 ‘핵심을 찌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창의성의 본질은 선명함만이 아니다. 창의성은 낯선 연결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 연결이 왜 의미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흥적 발산이 “좋은 시작”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이나 기획이 되지는 않는다. 술은 시작을 쉽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시작을 끝까지 끌고 가는 구조적 사고를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흔히 생기는 오해가 있다. “술을 마시면 아이디어가 많아지니, 술은 창의성에 좋다”라는 단순한 결론이다. 이 결론은 발산적 사고의 한쪽 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한 것이다. 창의성은 발산과 수렴이 번갈아 작동하는 리듬이며, 발산이 아무리 풍부해도 수렴이 따라오지 않으면 결과물은 남지 않는다. 반대로 수렴만 강하면 안전하지만 새로움이 사라진다. 술과 창의성의 관계를 정확히 보려면, 술이 이 리듬의 어느 구간을 돕고 어느 구간을 방해하는지 분리해서 이해해야 한다. 술이 제공하는 것은 대개 ‘문턱 낮추기’이며, 창작의 핵심은 ‘문턱 이후의 편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출발점이다.
발산은 늘지만 완성은 줄어드는 이유: 창의성의 두 엔진을 분해해 보기
발산적 사고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폭넓게 생성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다양’이다.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고 연결이 느슨해지며 연상이 빨라지기 때문에, 다양성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술은 사람의 억제를 낮춰 “일단 던져보자”를 가능하게 한다. 회의에서 침묵하던 사람이 갑자기 제안을 하고, 글을 시작하지 못하던 사람이 첫 문장을 적는 장면은 분명 현실에서 자주 관찰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이디어를 ‘좋은 아이디어’로 만드는 작업에는 수렴적 사고가 필요하다. 수렴적 사고는 기준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논리와 구조로 다듬어 현실과 접속시키는 능력이다. 술은 이 수렴적 사고의 정밀도를 떨어뜨리기 쉽다. 왜냐하면 수렴에는 작업 기억과 세부 판단, 맥락 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취기 속에서는 이 능력이 흔들린다. 그래서 아이디어는 많아졌는데, 정작 “쓸 만한 것”은 남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 하나의 착시는 ‘자기평가의 변화’에서 나온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 멋지게 평가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평소라면 “이건 너무 뻔하다”라고 버릴 아이디어가 “오, 이건 천재적이다”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 뇌가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평가의 기준이 느슨해진 것이다. 창작에서 자기평가는 잔혹하지만 필요하다. 잔혹함은 작품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남기기 위한 기술이다. 술은 그 기술을 잠시 빌려간다. 그래서 취기 속에서 ‘창의적 확신’이 커질수록, 다음 날의 실망도 커질 수 있다. 어젯밤의 메모를 아침에 읽었을 때, 그토록 대단해 보였던 문장이 허술하거나 반복적이거나 과장되어 보이는 경험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술은 창의성에 늘 해롭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술의 효과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무엇보다 창의성의 단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아이디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 ‘초기 발화’ 단계에서는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완벽주의가 강한 사람은 첫 시도를 못 하고 시간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술이 일시적으로 자기검열을 완화해 “일단 써보자”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도움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발화 이후에는 즉시 술의 영역을 벗어나, 맑은 정신으로 정리하고 편집해야 결과물이 남는다. 술을 “창작의 엔진”으로 두는 순간, 발산은 늘 수 있어도 완성은 멀어진다.
여기까지를 현실적으로 정리하면, 술은 발산적 사고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발산적 사고가 ‘드러나게’ 만들고, 동시에 수렴적 사고를 약화시켜 창의성의 전체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따라서 술과 창의성의 관계를 건강하게 다루려면 발산과 수렴을 분리해 운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컨대 아이디어만 쏟아내는 시간과 편집하는 시간을 분리하고, “아이디어 단계에서만 허용되는 자유”를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의 도구가 꼭 술일 필요는 없다. 산책, 샤워, 음악, 가벼운 잡담, 제한 시간 브레인스토밍 같은 방식도 동일하게 문턱을 낮출 수 있다. 술은 그중 하나일 뿐이며, 가장 위험한 점은 술이 ‘습관화’될 때 문턱이 점점 더 높아져 술 없이는 시작이 어려워지는 역설을 낳는다는 데 있다.
술을 ‘창의성’으로 착각하지 않는 법: 발산의 자유와 수렴의 책임을 분리하라
술과 창의성을 둘러싼 가장 흔한 오해는, 술이 창의성을 “올린다”는 단정이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술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순간에는 ‘발산의 출발’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창의성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창의성은 아이디어의 숫자보다 아이디어의 생존률에서 결정된다. 많은 아이디어 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남긴 것을 어떤 구조로 설득력 있게 만들지, 그 작업이 결과물을 만든다. 술은 이 작업을 섬세하게 수행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술을 창의성의 도구로 삼고 싶다면, 술을 작품의 생산라인에 두지 말고 ‘초기 발화의 문턱’에만 제한적으로 두는 편이 안전하다. 그리고 발화가 끝나는 순간에는 반드시 맑은 정신으로 전환해 수렴과 편집을 수행해야 한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습관은 “두 단계 기록”이다. 취기든 맑은 정신이든, 떠오른 아이디어를 즉시 적되, 다음 날 다시 읽고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다. A는 즉시 발전시킬 것, B는 보류, C는 폐기. 이 단순한 절차만으로도 술이 만들어낸 착시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아이디어를 적을 때는 감탄사나 과장된 자기평가(“대박”, “천재”)를 함께 적기보다, 아이디어의 조건(누가, 어디서, 무엇을, 왜)과 적용 범위를 메모하는 것이 좋다. 조건이 적혀 있으면 다음 날에도 검증이 가능하다. 반대로 감탄사만 남으면 다음 날에는 허무만 남는다. 술이 창의성을 높인다고 믿는 사람들이 자주 놓치는 지점은 바로 ‘검증 가능한 기록’이다. 발산은 마음이 하지만, 수렴은 기록이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관점은 창의성을 ‘정서’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보는 일이다. 술이 주는 기분 좋은 확신, 유쾌한 연결감은 창작을 시작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이 없으면 확신은 산만함으로 바뀐다. 시스템이란 반복 가능한 루틴, 작업 시간을 구분하는 규칙, 피드백을 받는 통로, 그리고 휴식과 회복을 포함한다. 술이 자꾸 창작의 중심으로 들어오면, 시스템은 취기의 컨디션에 종속되고 흔들린다. 반대로 시스템이 먼저 자리 잡으면, 술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주변 요소로 내려앉는다. 창작자는 결국 주변 요소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살아남는다. 술과 창의성의 관계를 건강하게 재정의한다는 것은, 술을 ‘영감의 신비’로 숭배하는 대신, 발산과 수렴이 번갈아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술의 위치를 최소화하고 명확히 규정하는 일이다.
정리하자면, 술이 발산적 사고를 돕는다는 느낌은 완전히 허구가 아니다. 다만 그 느낌은 창의성의 일부만 비추는 조명이다. 조명이 강하면 그림자가 생긴다. 술이 밝혀주는 것은 말문이 트이는 순간, 자기검열이 약해지는 순간, 연상이 풀리는 순간이다. 술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판단의 흐림, 맥락의 축소, 자기평가의 과장, 다음 날의 공허다. 이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때, 우리는 술을 창의성으로 착각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창작은 ‘한 잔의 운’이 아니라 ‘분리된 단계의 기술’로 자리 잡는다. 발산의 자유는 과감히 허용하되, 수렴의 책임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술과 창의성을 둘러싼 오해를 걷어내고, 실제로 창작을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