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술자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정교한 무대였다. ‘콘비비움(향연)’이라 불린 연회는 권력자와 지식인, 예술가가 한 공간에 모여 교양을 과시하고 관계를 다지는 자리였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포도주가 놓였다. 술은 식탁 위의 음료를 넘어 대화의 온도를 올리고, 침묵을 깨고, 경쟁과 유희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장치로 기능했다. 특히 시 낭송과 즉흥적인 재담, 음악 연주는 향연의 격을 결정하는 요소였고, 손님들은 한 편의 시를 들으며 자신의 취향과 학식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공연’이자 ‘사회적 언어’가 되었고, 술은 그 언어가 흐르는 속도를 조절했다. 로마의 향연 문화가 시와 음악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말은 술이 재능을 만들어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술이 필요해지는 환경과 수요를 만들었다는 뜻에 가깝다. 이 글은 로마의 연회가 어떤 규칙과 기대를 통해 예술을 촉진했는지, 그리고 그 화려함 뒤에 어떤 긴장과 그림자가 있었는지까지 함께 살펴본다.

연회는 사교가 아니라 ‘교양의 경기장’이었다
로마의 밤을 떠올리면 흔히 금잔과 과일, 풍만한 식탁, 그리고 취기가 만든 방종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로마의 향연은 단순한 흥청거림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자리는 무엇보다 신분과 명망이 교차하는 공간이었고, 평판이 만들어지고 흔들리는 장소였다. 누가 어떤 손님을 초대했는지, 어떤 음식과 와인을 내놓았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어떤 ‘품격’으로 마무리했는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다시 말해 향연은 사적 만남이라기보다 공적 이미지가 관리되는 장이었다. 이때 술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동시에, 참여자들의 말과 행동을 가볍게 흔들어 진짜 속내를 드러나게 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연회에서 예술은 단지 흥을 돋우는 장식이 아니라, 서로의 교양을 평가하고 관계의 우위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특히 시는 로마 사회에서 학식과 품위를 증명하는 가장 날카로운 수단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곧 라틴어의 리듬과 어휘를 다루는 능력을 의미했고, 고전적 전통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는지 보여 주는 시험대가 되었다. 향연에서 시를 낭송하는 장면은 관객을 감동시키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세계를 알고 있는가”를 과시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악기 연주와 노래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연회의 흐름을 조율하는 장치였다. 식사가 무르익는 구간, 대화가 과열되는 구간, 분위기가 처지는 구간마다 연주는 온도를 바꾸었다. 그 변화 속에서 술은 감정을 증폭시키고, 박수를 더 크게 만들고, 때로는 비평을 더 독하게 만들었다. 결국 로마의 향연은 예술을 ‘취향의 언어’로 만들었고, 술은 그 언어의 발음과 억양을 바꾸는 숨결처럼 작동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로마의 연회가 즉흥성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대화와 노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예의범절과 기대치가 촘촘히 자리한다. 어느 정도의 재치가 적절한지, 비판을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웃음과 조롱의 선을 어디에 두는지 같은 규칙이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술이 들어가면 그 규칙이 흐려지는 듯하지만, 동시에 규칙을 어기면 망신도 더 커진다. 그래서 향연에서 시와 음악은 실력을 시험받는 무대가 되었고, 그 무대가 반복되면서 공연과 창작의 필요가 꾸준히 누적되었다. 로마의 향연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술이 예술을 ‘낳았다’는 단순한 말 대신, 예술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어떻게 요구되고 소비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일에 가깝다.
와인 한 잔이 만든 수요: 낭송과 연주의 ‘필요성’
예술이 발달하려면 재능만큼이나 ‘필요’가 존재해야 한다. 로마의 향연은 바로 그 필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손님이 모이면 즐길 거리가 필요하고, 즐길 거리는 점점 더 수준을 요구받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노래와 농담으로 충분하지만, 반복되는 연회에서 주최자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이때 가장 손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차별화가 시와 음악이다. 시는 물리적 비용이 적으면서도 지적 권위를 드러내기 좋고, 음악은 공간의 공기를 즉각적으로 바꾼다. 주최자는 뛰어난 낭송자나 연주자를 곁에 두고 싶어 하고, 손님은 “그 자리에서 들었던 시”를 다음 날 이야기하며 주최자의 체면을 강화한다. 이런 순환이 생기면 예술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사회적 자본’이 된다. 그리고 사회적 자본이 된 예술은 더 많은 사람을 훈련시키고 더 많은 작품을 생산하게 만든다.
술이 이 과정에서 한 역할은 분명하다. 술은 감정의 진폭을 크게 만든다. 같은 시라도 맑은 정신으로 읽을 때보다 술자리에서 들을 때 더 쉽게 마음을 흔든다. 또한 술은 반응을 과감하게 만든다. 박수는 더 길어지고, 웃음은 더 쉽게 터지고, 반대로 불쾌함도 더 빨리 표출된다. 이 반응의 과감함은 예술가에게 강력한 피드백이 된다. 낭송자는 어느 구절에서 호응이 터지는지 확인하고, 연주자는 어느 리듬에서 사람들이 몸을 흔드는지 읽어낸다. 물론 이는 예술의 깊이를 얕게 만들 위험도 있다. 즉각적 환호를 노리다 보면 자극적인 표현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의 향연이 반복되며 쌓아 올린 것은 단순한 인기 기술만이 아니었다. 경쟁이 생기면 기술은 정교해진다. 누군가는 더 세련된 운율을 찾고, 누군가는 더 섬세한 감정의 이행을 설계한다. 그렇게 술자리의 ‘즉시성’이 예술의 ‘정교함’과 묘하게 결합한다.
또 하나의 요인은 연회가 가진 계층적 긴장이다. 로마에서 예술은 때로 자유인의 교양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회장에 동원되는 연주자와 가수의 노동이기도 했다. 즉, 누군가의 품격은 누군가의 연주로 세워졌다. 이 불균형은 불편하지만, 예술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는 통로이기도 했다. 일정한 수요가 있고 보상이 주어지면 숙련이 축적된다. 향연이 많을수록 더 많은 연주자가 필요하고, 더 많은 레퍼토리가 요구되며, 그 과정에서 음악은 기술로, 직업으로, 그리고 더 넓게는 문화로 퍼진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향연에서 인정받는 시는 특정한 감각과 학습을 필요로 한다. 결국 연회는 시와 음악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으로 만들었고, 술은 그 사회적 장면을 매끄럽게 굴리는 윤활유였다.
그러나 술이 늘 긍정적 촉매였던 것은 아니다. 향연은 취향의 다툼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고, 술은 그 다툼을 가끔 폭발시켰다. 시 한 줄이 조롱으로 들리면 관계가 틀어지고, 노래의 선택이 특정 집단을 비꼬는 신호로 해석되면 정치적 긴장까지 번질 수 있다. 이 위험이 존재했기에, 오히려 예술은 더 섬세한 언어를 발달시켰다. 돌려 말하기, 암시하기, 상징을 통해 비판하기 같은 수사학은 향연의 공기 속에서 빛을 발한다. 정면 비난은 싸움을 부르지만, 은유는 웃음으로 포장된 비평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로마의 향연은 예술을 단지 즐거움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로 끌어올렸고, 술은 그 기술이 시험받는 장면을 더 자주, 더 격렬하게 만들어 주었다.
로마의 술자리가 남긴 유산: 예술은 사람 사이에서 자란다
로마의 향연 문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사실은 예술이 고립된 천재의 방에서만 자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은 고독 속에서 진행되기 마련이지만, 그 작품이 어떤 어조와 리듬을 가지게 되는지에는 사회적 장면이 깊이 관여한다. 로마의 연회는 예술이 보이고 평가받는 자리였고, 그 평가가 다음 작품의 방향을 바꾸었다. 술은 그 자리에서 감정의 마찰을 키우며 반응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로마의 향연을 ‘예술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수 있으나, ‘예술이 자랄 환경을 만든 기제’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술의 힘이 아니라,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청중과,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망, 그리고 그 관계망이 지속되는 반복성이다. 로마는 향연을 통해 그 세 가지를 동시에 제공했다.
동시에 우리는 로마식 향연이 가진 그림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예술이 교양의 상징으로 소비될 때, 예술은 쉽게 장식으로 전락한다. 시는 감정을 건드리기보다 인용 과시가 되고, 음악은 듣기보다 배경음이 된다. 술은 그 전락을 감추는 장막처럼 작동할 때가 많다. 취한 분위기 속에서는 얕은 감동도 깊은 감동처럼 느껴지고, 시시한 재담도 위트로 포장된다. 따라서 로마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단순히 “술자리에서 예술이 발달했다”가 아니라, “예술이 사회적 무대에 올라설 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에 있다. 예술이 사람 사이에서 자라는 만큼, 사람 사이의 욕망과 권력도 예술의 방향을 좌우한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로마의 향연을 오늘에 가져오는 올바른 방식이다.
결국 술과 예술의 관계는 한 문장으로 정리되기 어렵다. 로마의 향연이 보여 주는 것은 술이 영감을 만들어 내는 마법이 아니라, 예술이 유통되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상황의 힘’이다. 술은 말과 웃음, 비평과 찬사를 더 쉽게 흐르게 하며, 그 흐름 속에서 시와 음악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돕는다. 그러나 예술이 남는 것은 취기 때문이 아니라, 취기 속에서도 살아남는 구조와 문장, 리듬과 균형 때문이다. 로마의 연회장은 화려하게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더 단단한 형식이 다듬어졌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술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술자리가 만들어 내는 인간적 장면이 예술과 만나는 지점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은 결국 한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되지만, 그 손끝을 움직이게 하는 질문과 경쟁, 위로와 조롱은 대개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