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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가 만든 취한 영감의 신화와 그 이면

by 아빠띠띠뽀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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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는 예술가를 ‘기술자’가 아니라 ‘천재’로 재정의한 시기였다. 작품은 숙련의 결과이면서도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번뜩임의 산물로 여겨졌고, 그 번뜩임을 상징하는 가장 간단한 장치가 술이었다. 밤, 촛불, 고독, 그리고 한 잔의 술은 예술가의 내면을 열어젖히는 열쇠처럼 소비되었다. 하지만 이 서사는 시대적 분위기와 계급의 변화, 시장의 확대, 예술가의 불안정한 생계, 그리고 “고통 속에서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는 도덕적 미학이 겹쳐 형성된 결과이기도 하다. 술이 실제로 창작을 돕는지 여부와 별개로, 술은 ‘예술가다움’을 연출하는 상징이 되었고, 대중은 그 상징을 통해 예술을 더 쉽게 이해했다고 느꼈다. 이 글은 낭만주의가 어떻게 ‘취한 영감’ 신화를 굳혀 갔는지, 그 신화가 창작의 노동과 건강을 어떻게 가렸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 신화를 어떤 거리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살펴본다.

 

낭만주의가 만든 취한 영감의 신화와 그 이면

천재의 탄생: 노동이 지워질수록 술이 빛났다

낭만주의는 예술을 한층 개인적인 사건으로 만들었다. 이전 시대에도 뛰어난 예술가가 있었지만, 낭만주의는 “작품은 곧 작가의 영혼”이라는 관념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때 예술가는 더 이상 주문에 따라 작품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시대와 세계를 자신만의 감정으로 재해석하는 존재로 떠오른다. 문제는 이 재해석의 과정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폭풍,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 말로 붙잡기 어려운 슬픔과 황홀은 관객에게 전달되기 위해 ‘상징’을 필요로 한다. 낭만주의가 술을 끌어안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술은 사람의 표정을 바꾸고, 목소리를 느슨하게 하고, 밤을 길게 만들며, 무엇보다 “평소의 나와 다른 상태”를 단번에 보여 준다. 대중은 그 상태를 곧바로 영감과 연결하기 쉬웠다.

또한 낭만주의는 예술가의 삶을 작품의 일부로 소비하는 방식을 강화했다. 시인의 방, 작곡가의 습관, 화가의 고독은 해설이자 홍보가 되었고,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처럼 제시되었다. 이때 술은 매우 효율적인 서사 장치다. “술에 취해 쓴 시”라는 문장은 긴 창작 과정을 한순간으로 압축해 주고, 노력의 시간을 신비의 순간으로 바꿔 준다. 사람들은 그 신비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신비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수십 번의 퇴고”나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한 연습”은 존경받을 수는 있어도 전설이 되기는 어렵다. 낭만주의적 대중은 예술가를 통해 일상의 규범을 탈출하고 싶어 했고, 술은 그 탈출의 표지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신화는 시대적 조건을 함께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근대의 예술 시장이 확대되며 예술가는 후원자에만 의존하던 구조에서 점차 대중과 출판, 공연의 시장에 기대게 된다. 자유가 늘어난 만큼 불안도 커졌다. 예술가의 생계는 흔들리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실패는 공개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환경에서 술은 위로이자 도피로 등장하기 쉽다. 즉, 술이 작품을 낳았다기보다, 작품을 낳는 사람이 처한 불안정이 술과 동반 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취한 영감’이라는 말은 고통의 사회경제적 원인을 지워 버리고, 개인의 기행과 낭만으로 치환한다. 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신화의 핵심은 여기서 드러난다. 술은 영감의 원인이 아니라, 천재 서사를 꾸미는 상징이 되었고, 그 상징은 노동을 가리면서도 감정을 과시하는 데 탁월했다.

 

낭만주의의 문장과 술의 이미지: “밤의 예술가”를 만드는 장치들

낭만주의 미학은 밤과 어둠을 사랑했다. 밤은 사회적 역할이 느슨해지는 시간이며, 감정이 더 크게 들리는 시간이다. 낮에는 해야 할 일이 많고, 타인의 시선이 분명하며, 말은 실용성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밤에는 실용이 후퇴하고, 감정과 상상이 전면으로 나온다. 술은 바로 이 밤의 성질을 한층 강화한다. 취기는 시간 감각을 흐리고, 기억을 편집하며, 자기 검열의 벽을 낮춘다. 그래서 ‘밤+술’이라는 조합은 낭만주의가 원하는 예술가의 얼굴을 만들어 준다. 창작의 고통이 시각적으로 드러나고, 고독이 더 고독해 보이며, 한 줄의 문장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배경이 된다. 대중이 낭만주의 작품을 읽을 때, 작품 속의 열정만큼이나 그 열정이 생성되었다고 상상되는 장면을 함께 소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술은 감정의 진정성을 보증하는 도장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정리된 문장은 때때로 계산된 것으로 오해받는다. 반면 술기운 속에서 나온 말은 “가공되지 않은 진심”으로 해석되기 쉽다. 낭만주의는 진심을 숭배했고, 그래서 취한 상태의 고백은 더욱 매혹적인 서사가 된다. 하지만 진심과 즉흥은 동일하지 않다. 즉흥은 검열이 줄어든 상태에서 튀어나오는 표현일 뿐이며, 그 표현이 예술로 남으려면 결국 선택과 편집을 거쳐야 한다. 낭만주의가 만든 문제는, 편집의 노동을 사랑하기보다 즉흥의 순간만을 사랑하도록 감각을 길들였다는 데 있다. ‘취한 영감’ 신화가 널리 퍼질수록, 창작의 핵심인 반복과 수정은 뒷전으로 밀리고, 대신 고통과 방탕이 예술의 조건처럼 포장된다.

더구나 ‘취한 예술가’ 이미지는 시장에서 강력한 상품이 되었다. 작품을 파는 것만큼이나 작가를 팔아야 하는 시대가 오면서, 작가의 개성은 브랜드가 된다. 그 브랜드가 대중에게 한 번에 전달되려면 복잡한 설명 대신 상징이 필요하다. 술은 그 상징으로 최적이다. 술병은 사진과 삽화에서 즉시 읽히는 기호이며, 술잔은 “불안정하지만 매혹적인 영혼”이라는 메시지를 단번에 전달한다. 이 상징이 반복되면 개인의 습관은 시대의 전형이 되고, 전형은 다시 후대의 예술가에게 강요된다. “예술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규범이 생기고, 술은 그 규범의 구성 요소가 된다. 낭만주의가 남긴 가장 끈질긴 유산 중 하나가 바로 이 강요다.

물론 낭만주의 시대의 모든 예술가가 술에 기대어 창작한 것은 아니다. 또한 술을 마셨다고 해서 곧 예술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신화가 유지되는 이유는, 신화가 사회적으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신화는 예술의 복잡함을 단순화하고, 관객이 작품을 “한 가지 정서”로 읽게 만든다. 또한 신화는 예술가의 고통을 낭만으로 바꾸어, 사회가 그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묻지 않게 만든다. 불안정한 노동, 빈곤, 질병, 고립 같은 문제는 개인의 ‘예술가 기질’로 치환되고, 술은 그 기질의 상징으로 붙는다. 결과적으로 신화는 예술가를 이해하는 척하면서 예술가를 고립시키는 역설을 낳는다. 낭만주의적 술의 이미지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혹적이지만, 그 매혹이 실제 삶을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그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신화를 걷어낸 자리에서: 영감은 취기가 아니라 구조에서 온다

‘취한 영감’ 신화를 낭만주의의 유산으로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술을 미화하지도 금기시하지도 않는 균형이다. 낭만주의가 술을 통해 보여 준 것은 사실 영감의 화학 작용이라기보다, 예술이 태어나는 심리적 조건에 대한 집착이었다. 불안, 열정, 고독, 상실, 사랑과 같은 감정이 예술의 토양이 될 수 있다는 통찰 자체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그 토양을 관리하고 가꾸는 방법이 술로 단순화되었다는 점이다. 감정이 크면 작품이 나온다는 믿음, 감정이 폭발해야 진짜라는 믿음이 퍼지면서, 감정을 다루는 기술—거리 두기, 관찰, 정리, 구조화—는 덜 주목받았다. 그러나 예술은 감정을 ‘그대로’ 내놓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형태로 바꾸어 타인에게 전달 가능한 경험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 변환은 대개 맨 정신의 시간에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낭만주의적 술의 신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신화가 여전히 창작자에게 압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깊은 감정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 고독과 방탕을 선택해야 예술가답다는 강박은 창작을 돕기보다 오히려 창작을 좁힌다. 반대로 신화를 완전히 부정하며 “술은 예술과 무관하다”라고 말하는 것도 현실을 놓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술은 긴장을 완화하고, 말문을 트고, 관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그 역할은 영감의 원천이라기보다 맥락의 일부다. 술이 제공하는 것은 대체로 ‘문턱을 낮추는 효과’이며, 작품을 완성하는 힘은 문턱을 넘은 뒤에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술이 아니라,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환경과 습관, 그리고 반복 가능한 구조다.

낭만주의가 남긴 신화를 가장 건강하게 계승하는 방법은, 그 신화를 창작의 ‘장면’으로만 인정하고 ‘법칙’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술잔이 놓인 책상은 한 시대의 상징일 수 있지만, 그 상징이 모든 예술가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낭만주의가 강조했던 진심을 다른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다. 충분히 깊이 관찰하고, 솔직하게 기록하고, 냉정하게 편집하며, 다시 뜨겁게 붙잡는 과정 속에서 진심은 더 오래 남는다. 취기가 주는 즉흥은 순간을 빛나게 할 수 있으나, 예술은 결국 시간이 남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취한 영감’ 신화는 매혹적인 이야기로 남겨 두되, 창작의 실제를 지탱하는 힘은 절제된 루틴과 안전한 관계, 그리고 삶을 버티게 하는 구조에서 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낭만주의의 술은 우리를 파괴하는 전설이 아니라, 과거를 이해하는 하나의 렌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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